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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님은 정해 일주를 중심으로 합니다. 정해 일주는 호수 위의 달이나 강물 위에 띄운 촛불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고즈넉한 분위기도 있고, 어둠 속으로 포용하는 마음도 있으며, 물과 불의 만남으로 생명 탄생의 느낌도 있고, 무언가 기다리고 염원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는 정해 일주의 일지 해수가 십이운성론의 관점에서 태이기도 하고, 신살로는 천을귀인에 해당하기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정해 일주가 무조건 도덕적이고 긍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둠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또 그만큼 비밀이 많고 의뭉스러울 수도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정해 일주의 일지 해수의 지장간에는 무토 상관, 갑목 정인, 임수 정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정관과 정인의 작용은, 원칙을 지키고 자신의 베이스 캠프를 탄탄히 하면서 현상 유지를 하려 합니다. 그리고 상관의 기운은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알리고자 합니다. 그만큼 정해 일주는 기본을 탄탄히 한 뒤에 자신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이는 역시나 생명 탄생의 느낌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도 일단은 안정적인 환경에 씨앗이 뿌려지고, 그 다음에는 새싹이 땅 위로 돋아나듯 성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장간 안에 정관과 상관만 있다면 충돌을 할 수도 있지만 정인이 중간에 위치하면서 적절히 둘의 충돌하는 기운을 포용하면서 각각의 장점을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해 일주는 보수적 특성과 진보적 특성을 적절히 갖추게 되고, 이러한 느낌이 큰 포용력으로 작용하여 다양한 사람을 아우르게 됩니다.

 

그런데 달빛이 호수의 물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고, 촛불이 강물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즉, 정해 일주의 주체는 일간 정화인데, 정화의 기운이 온전히 일지 해수를 장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 주변으로 인성의 기운과 비겁의 기운이 보좌를 해야 일지 해수의 정관 기운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일단 해수의 지장간에 갑목과 월지에 묘목 편인이 일간에 힘을 줍니다. 그런데 일간 정화는 음간이라 파워가 약합니다. 그래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원래 이름은 승룡이었는데 승만으로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사주는 하늘의 기운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름은 하늘에게 받은 기운의 부족함을 인위적으로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늦을 만’이라는 글자는 그 안에 ‘해 일’, 즉 태양의 기운을 품고 있어 일간 정화의 기운을 강화시켜주게 됩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일간 정화가 승만 님 사주에 크게 자리잡은 정관의 기운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관성의 기운은 십자가의 무게이자 책임의 무게, 등짐에 해당합니다. 그것을 감당할 힘이 있다면 큰 책임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것이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병이 나거나 외부적 충돌이 생기거나 관재수로 인해 국가와 같은 큰 조직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승만 님이 개명을 한 것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고 무조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의 개명은 충분히 사주 상으로는 필요하고 의미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더불어 승만 님의 사주에는 월간에 식신이 있고, 일지 해수의 지장간에 무토 상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주변이 없는 사주가 아닙니다. 철저히 원칙을 지키고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사주입니다. 실제로 승만 님은 만민공동회의 집회에서 훌륭하게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해 일주의 음간 정화는 그 불길이 안정적이고 크게 타오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일지 해수는 역마살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승만 님도 많은 경험을 통해 단련되었고, 여기저기 이동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진득하게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권력의 정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법치주의 국가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을 내려놓았다면 충분히 다수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임시정부 인사들과의 권력 다툼이나 미군정을 끌어들인 일, 한국 전쟁 때의 두서없던 행동 등도 어느 정도 묵인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만 님은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자신과 같은 왕족 집안의 고종 황제처럼 독재적 권력의 왕이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는 사주 상으로 볼 때,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오른 그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싶은 관인상생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온갖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권력이라는 것은 한 번 잡으면 계속 유지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내려놓았을 때의 큰 두려움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끝을 어느 정도 예견하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견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마지막 권력욕이 최측근이었던 이기붕 부통령의 충동질 때문이었다고도 말합니다. 기붕 님은 참모의 사주이면서 2인자로서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권력이 계속 유지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에는 성향상 맞지도 않고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에는 결기가 강한 것에 비해서 포용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승만 님은 3/15 부정선거 뒤에 4/19 혁명으로 인생의 끝을 불명예로 장식하게 됩니다.

 

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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